다람쥐🐿

누군가의 생존신고

당근먹는하니 2022. 10. 26.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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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오후 2시쯤 나는 밖에서 나는 오토바이 소리에 귀 기울였다. 4층 건물의 옥탑에 살았던 지라, 오토바이 소리는 귀 기울이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난 아빠의 오토바이 소리만큼은 알 수 있었다. 바쁜 점심시간은 피해서, 조금 한가해졌을 때,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면, 1분 뒤쯤 아빠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뚜렷한 기억이 있는 건 아니지만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였기에 아빠는 다소 거친 숨을 내쉬었으리라.

 프랜차이즈 햄버거 집에서 배달 기사로 일하던 아빠는 항상 내 점심을 가져다주셨다. 나는 집에서 게임을 하다가 아빠가 준 햄버거를 받고, 햄버거를 먹고선 다시 게임을 했다. 가끔은 오토바이 소리를 듣고 옥상에 나가서 기다리기도 했다. 주머니가 많이 달린 그물 같은 조끼를 입은 아빠. 가끔 우리는 서로를 안고, 내가 아빠의 볼에 뽀뽀하기도 했다.

 

 속상하지 않았으면 거짓말이다. 소위 '화이트칼라'였던 아빠, 압구정의 뜻이 뭐냐는 뜬금없는 질문에도 바로 답해주는 아빠가 조금이라도 위험한 일을 한다는 것이, 단순노동을 한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근데 속상해하면 난 정말 이분법적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이 되는 거고, 아빠도 속상해할 것 같아서 내색하진 않았다. 그치만 속상했다.

 

 사실 속상한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우연히 엄마 메일의 휴지통을 봤는데 아빠 메일이 있었다. 내용은 지금 청주에 내려와 이런 일을 하고 있고, 하는 일에서 보험을 들어주니 그 보험비를 내가 받아서 살 수 있도록 눈이 많이 오면 미끄러지는 사고를 내어 사고 아닌 사고사를 당할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내가 어릴 때 이혼했고, 그러니 아마 이 메일은 그러니 나를 잘 부탁하고 그 돈을 무사히 받게 해달라는 부탁이었을 것이다. 사실 그 나머지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 내용을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그저 눈물이 흘러 흘러 베개에 웅덩이를 만들 때까지 펑펑 우는 수밖에 없었다.

 

 속상한 이유였지만, 그러기에 속상해선 안되었다. 내가 속상하면 이건 진짜가 될 테니까. 나는 눈이 오지 않길 바랐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아빠가 배달일 하는 게 무어라고, 나는 전혀 슬프지 않았다. 평생을 살아온 지역을 벗어나 다른 지역에 와서, 작은 옥탑방에서 아빠와 흰 강아지와 나란히 잠을 잤다. 작디작은 옥탑방이었지만 하늘과는 가까웠다. 나의 우주 속에선 그걸로 충분했다.

 

 그 옥탑방에서 먹는 햄버거는 우주에서 내가 점유한 크기에서 아빠의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반증이었다. 그 햄버거는 어떤 생명이 살아보려 애쓰는 흔적의 기침 같은 것이었다. 아팠지만 살아있음의 증거였다. 난 그래서 그깟 햄버거가 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깟 햄버거를 매일 먹는 것에 감사했다. 내겐 오토바이 소리가 봄이 움트는 소리만큼이나 중요한 것이었다.

 

 그 해 겨울엔 눈이 많이 내렸다. 그리고 아빠는 그 후 네 번의 겨울을 나와 함께 했다. 결국 아빠의 메일대로 이루어진 것은 없었다. 아빠는 살고 싶었을 것이고, 살고 싶어 했다. 나는 쉬이 죽고 싶어 하지만, 매일 배달되던 갈색빛의 햄버거 봉투를 생각하며 생존 신고를 한다. 솔직히 슬프지 않은 건 아니다. 그래도 아빠가 걱정하지 않았으면 한다. 아빠가 갖다 주던 햄버거는 맛있었고, 나는 배고프니까, 계속 살아갈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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